영화를 보면 음악이 유독 마음에 맴도는 영화들이 있다.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그렇고 그리스 출신 작곡가 "반젤리스"의
"1942 콜럼버스"의 영화 음악들이 그렇다. 이 영화 "ONCE"의 음악들을 그런 거장들의 음악의 반열로 올리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만난 두 남녀의 사랑 주위를 잔잔히 흘러가던 그 음악들은 영화관에서 나오는
순간까지 내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특히 진솔한 가사와, 꾸밈없는 음정, 맑은 통기타 소리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사랑과 너무나 닮아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잡을 수 없었던 남자와,
먼 길을 떠난 남편을 둔 여자.
비록 통속적인 아침 연속극과도 같은 인물 구도였지만,
이 영화가 그려낸 사랑과 이별이야기는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하루 아침에 사랑에 빠지고, 또 쉽게 사랑을 버리고 떠나는 현대인의 인스턴트식 사랑을 그려낸 영화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거나 비극이다. 소설을 쓰듯 기-승-전-결로 이루어진, 수 많은 정형화된 사랑의 공식 속에서, 이 영화는 사랑에는 또 다른 모습도 있음을 잔잔히 그려낸다.
길 모퉁이에 서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드는 남자와, 피아노 가게 주인의 허락을 받아 가끔 피아노 연주를 하며 지친 삶을 위로하는 한 여자가 만났다. 비록 그들은 가난했지만, 둘은 곧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조용히 서로의 감정의 선을 두드린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산책을 하던 중 남자는 문뜻 여자에게 `아직 남편을 사랑하고 있냐'는 말이 체코어로 무엇이냐고 묻는다. 짐짓 그 의미를 못 알아들은 척 체코어를 가르켜 준 여자는 곧 남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체코어로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조용히 되네이는데, 이 때 이 여자의 속삼임은 그 어떤 소리보다 부드럽고 강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하룻밤 격렬한 섹스를 하지도 않았고, 이별에 눈물 흘리지도, 상대를 붙잡고 소리를 치지도 않았다.
사랑한 사람이 있었고, 사랑을 했으며, 사랑했기에 서로를 조용히 떠나보낸다.
남자는 런던으로 떠나고, 여자는 돌아온 남편과 재회한다.
그리고 남자는 떠나기전 여자가 가끔 들르던 피아노 가게 주인에게 여자에게 줄 피아노를 주문한다.
그리고 영화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녹음했던 음악이 흘러나오며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두 남녀의 사랑은 조용한 미술관의 모퉁이에서 공교롭게도 같은 작품을 보며 서있는 것과 같이 짧고 어색했다. 하지만, 헤피엔딩과 비극을 넘나들며 감정 과잉으로 끈적거리는 현대인의 사랑을 지켜보며, 현대인에게 있어 사랑이란 상대방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렇기에 이 두 남녀의 이루어지지 않은 어색하고 짧은 사랑 속에서, 진실한 사랑의 모습을 찾고 있는 내 모습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사랑의 모습은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모두 다를 것이다.
그리고 각자 삶의 이유와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 누구도 타인의 사랑을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하룻밤 격렬한 섹스로 끝나는 사랑도 사랑이고, 평생을 주변을 맴돌며 기다리는 사랑도 사랑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구성요건이 있다면, 이 영화의 두 남녀의 사랑은 미수 조차도 아닌 그런 사랑이겠지만, 서로의 감정의 선을 조용히 건드리며 물러서는 두 남녀의 모습이 일으킨 공명은 내 마음에는 깊은 떨림을, 내 입가엔 조용한 미소를 만들어 주었다.
p.s.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춘희역의 "심은하"가 철수를 보며 이런 대사를 한다.
"사랑이란게 처음부터 풍덩 빠져버리는건 줄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가는 것 인줄은 몰랐어."
이 영화를 보며 난 이 대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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