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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책이야기

[책]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저, 최준석역, 한겨레출판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부제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란 책이다.

절판되었던 책이 다시 한겨레출판사를 통해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구입했다.

 

이 책은 인디언 기록 문학을 대표하는 책으로 인디언들의 멸망과정을 그려낸다.


청교도 정신으로 건국한 미국은 그 건국과 확장과정에서 수 많은 인디언들을 학살했는데, 그 학살이 비교적 최근까지 이어진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에게 미개한 존재였고 개화의 대상이었으며 선교의 대상이었을 뿐이었기에 그들에게 법과 인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그 위대한 미국 헌법의 천부인권은 백인만을 위한 장난감에 불과했다. 따라서 인디언들의 작은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고, 백인들의 위법은 관용과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인디언들을 이해하고 인디언들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런 소수는 잔학한 일부와 침묵하는 다수에 의해 인디언이 멸망되는 과정을 막아 낼 수 없었다.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이 우리에 갇혀 아무 데나 가고 싶은데 갈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고서 만족하기를 바란다면 강물이 거꾸로 흐르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 네즈페르세족의 조셉 추장 

 물론, 인디언의 멸망에 있어 그들 스스로가 멸망을 초래한 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들의 리더인 추장들은 젊은 인디언들을 설득하거나 통제하지 못했고, 각 지역의 인디언들은 연합하지 못했다. 미국의 회유책에 동화되는 부족이 있는 반면, 끝까지 전투에 임한 부족이 있었고 심지어는 용병으로 고용되어 다른 인디언들을 색출하는 인디언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디언들의 몰락 원인을 인디언들에게 돌릴 수 없는 이유는 당시 미국 정복자들의 의도적인 기만과 잔인함에 있다.

 토지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인디언들에게 토지 매매는 이해할 수 없는 제도였고, 글을 모르는 그들에게 말로 설명한 조약과 실제 체결된 조약의 차이로 인한 불이익은 피할 수 가 없었다. 또한 미국 당국과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수시로 약속을 어기거나 조약을 위반하기도 했는데, 인디언들이 조약을 위반하지 않을 때에는 의도적으로 조약의 위반을 유도하기 위해 인디언들을 도발하기도 했다.

이렇듯 흑인 노예가 해방되고 여성의 투표권이 보장되는 시기에도 인디언들에 대한 학살은 전미를 걸쳐 이루어졌는데, 그 학살의 대상은 인디언 전투원 뿐만 아니라 노인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까지 그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약속된 식량이 제공되지 않는 인디언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사냥이 필수적이었고, 사냥을 위해서는 강제로 배정된 자신들의 구역을 벗어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곧 자신들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빌미가 될 뿐이었다. 또한 미국의 대통령을 큰 아버지라 믿고, 위대한 정령이 인디언뿐만 아니라 백인들도 만든 이유는 함께 살기 위한 것이라 믿었던 인디언들에게 "명백한 운명" (유럽인과 그 후손들이 신대륙을 다스리도록 운명 지어져 있으며, 지배민족으로서 당연히 인디언의 땅과 삼림과 광산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개념)을 이유로 자신들의 땅과 자산을 빼앗는 미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당신들은 집을 지어주고 보건소를 만들어줄 테니 주거지역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원치 않는다. 나는 바람이 거칠 것 없이 불어오고 햇빛을 가리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울타리도 없고 모든 것이 자유롭게 숨 쉬는 곳이다. 벽 안에 갇혀서 죽기보다는 거기서 죽고 싶다.
 
                                                                       - 얌파리카 코만치족의 열마리곰


 

  이 책을 읽으면서 인디언들의 잔혹한 멸망 뒤에 도사린 인간의 이기심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방의 순수함을 이용한 계략과 사소한 이익을 위한 학살의 이면에는 자신들이 인디언보다 우월하다는 인종관이 바탕하고 있었는데, 선교사들 또한 인디언들을 개종의 대상인 미개인으로 보고 그들을 탄압한 것은 너무나 슬픈일이었다.

인디언의 종말은 이미 끝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고, 그들을 향한 학살과 착취는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성적 소수자, 노동자라는 또 다른 현대의 인디언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기록하고 되돌아 보는 이유는 또다시 그러한 실수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현대의 또 다른 인디언들이 소리없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작다고 하더라도 용기있게 목소리를 내야한다. 그렇게 작은 목소리들이 모이고 모일때 우리의 후손들은 살아있는 현대의 인디언들과 함께 더 다양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하나의 사람일 뿐이다. 나는 부족의 목소리이다. 그들의 마음을 나는 말한다. 

나는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들은 나에게 백인의 권리를 거부한다.

내 피부는 붉지만 심장은 백인과 똑같다.                                        
 

- 모도크족의 킨트푸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