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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가면을 써야하는 소녀의 슬픔 - 뭉크의 사춘기 본문

문화이야기/그림이야기

[그림] 가면을 써야하는 소녀의 슬픔 - 뭉크의 사춘기

바람다당 2012. 3. 1. 15:05

뭉크 사춘기뭉크 '사춘기', 캔버스에 유채, 150x110cm, 1894년,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미술관


 감정에 솔직해 지는 것과 자신의 생각을 두려움 없이 표출한다는 것은 어쩌면 철이 든다는 것과 반비례 관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철이 든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에 유능해 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뭉크 작품 `사춘기'를 감상하다 보면 슬픔의 감정이 느껴지곤 합니다. 
 


 여기에 한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모델 경험이 없는 소녀를 그리는 것이 유행했다고 하니, 이 작품 속의 소녀녀에게는 이 작품이 첫 작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소녀가 누드 모델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어느정도 사회적 용인이 있었던 시대라고 할지라도, 사춘기에 이른 소녀가 낯선 남자 앞에서 옷을 벗고 모델로 서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소녀는 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누드모델을 하게된 어느 가난한 가정의 딸이라고 유추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럼 이 가정들을 토대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가난한 가정의 딸인 한 소녀가, 중개업소를 통해 뭉크라는 작가를 소개받고 조심스레 그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작가가 원하는 자세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가 긴장을 풀지 못하자 뭉크는 긴장을 풀라는 의미에서 어색한 유머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뭉크의 불안한 성격상 그의 유머가 재미있었을리는 없고, 이 상황이 어색한 소녀는 더욱 긴장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작가의 지시대로 방 한켠에 옷을 벗어 놓고 침대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습니다.


뭉크 사춘기뭉크 '사춘기' 부분, 캔버스에 유채, 150x110cm, 1894년


 그리고 
 소녀는 뭉크를 응시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뭉크도, 지금 이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도 그런 그녀를 마주보고 있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보이지 않는 무표정함. 
 앳되보이는 그녀는 벌써 철이 든 어른의 상징인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를 응시하던 뭉크는 그녀의 가면을 발견합니다.
 그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가면, 그 가면을 발견한 뭉크는 그녀의 뒤를 검고 커다란 그림자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미술평론가들의 말대로 이 그림자는 성에 눈을 뜬 소녀의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초경의 상징일 수도 있겠지만, 뭐든지 성적인 문제로 해석하고 분석해야만 하는 그들의 분석방법이 저는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그림은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니 저는 이 그림자를 초경에 대한 상징이나 성에 대한 호기심 혹은 두려움으로 해석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이 소녀의 불안과 긴장이 뭉크에게 전해졌고, 그 불안함을 뭉크가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겠지요. 햇살이 비치는 자연속에서 무한한 공포와 절규의 소리를 듣고 이를 그려낸 뭉크라면, 이 소녀의 소리 없는 비명을 듣지 못했을리 없으니까요.


뭉크 사춘기뭉크 '사춘기' 부분, 캔버스에 유채, 150x110cm, 1894년


 그렇게 옷을 벗고 침대에 걸터앉은 소녀는 잔뜩 긴장한 마음이 되어 움츠러듭니다.
 경직된 팔과 어색한 손의 위치, 그리고 그녀의 턱과 목에서 낯선 사내 앞에서 옷을 벗고 앉아있어야 하는 그녀의 긴장된 떨림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눈을 바로 뜨고 허리를 곧추세워 정면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오늘 그녀가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의미에서는 그녀의 가난한 부모에게 가지고 돌아갈 "돈"을 위해서, 조금 확장해서는 그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활, 즉 모델로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어른의 가면을 쓰고 자신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숨겨야 하는 것입니다.
 

뭉크 엄마의 죽음The Dead Mother (엄마의 죽음) 1899-1900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사춘기란, 위의 작품 "어머니의 죽음" 속에 드러난 어린소녀와 같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사춘기 소녀의 정서적 가면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른과 아이의 미묘한 긴장관계 속에서 서서히 어른의 역활을 해야만 하는 소녀의 두려움과 불안이 저를 슬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뭉크 아픈 어린이The Sick Child, 1885-1886


 뭉크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게 됩니다. 그리고 곧이어 그의 누이마저 잃게 되었고, 군의관이었던 아버지는 그런 슬픔을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표출했습니다. 어린 뭉크는 어머니의 죽음과 누이의 상실, 그리고 아버지의 발작과 같은 광포함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슬픔과 공포의 감정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뭉크 절규절규

 

"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가는 것 같았다."

뭉크 불안불안



뭉크 마돈나마돈나



 그렇게 자신의 내재된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과감한 선과 색을 사용한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긴장감과 불안함이 짙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그의 강렬한 색채를 사용한 표현주의적 화풍속에서 감정의 정화와 감동을 받게 됩니다.

  어쩌면 그의 불우한 인생이 뭉크 자신에게는 슬픈 삶이었겠지만, 작품으로 남겨진 그의 그림들을 보노라면 그 삶이 예술가로서는 축복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 이기적인 생각의 연장선상에는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분노와 불안을 정화하고 싶은 카타르시스의 욕구가 있습니다. 비극과 슬픔 그리고 불안의 표출이라는 정서적 감정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어야 하는 어른들의 세계는 이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요.



 그래서 또 하나의 가면을 쓰기 시작한 이 앳된 소녀의 얼굴을 보며.
 또한 사춘기라는 긴장된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는 어린 이 여인의 삶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과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뭉크가 그녀를 바라보며 느꼈던 그 검은 그림자와 같은 슬픔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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