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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북미 최후의 인디언 이야기 -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본문

문화이야기/책이야기

[책] 북미 최후의 인디언 이야기 -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바람다당 2012. 7. 10. 17:35

 

 

 

 

 

 출판계에도 유행이 있어 한 때 인디언에 관련된 책들이 쏟아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이 책도 뒤늦게 그런 유행에 편승하려 하는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위베르 망시옹'은 대형 로펌 출신의 변호사였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퀘벡 TV방송국의 로프트 스토리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 그의 삶의 방향이 바뀌는데요, 그 이유는 이 프로그램 안에서 북미 최북단 북퀘벡에서 살고 있는 인디언, 크리족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승승장구하던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던 것일까요?  

 저는 이 궁금증의 연장선에서 책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Kenepequoshes (Son of a Snake) Cree Indian with traverse, Calgary. Kuskita Au Musqua (Black Bear)
Kenepequoshes (Son of a Snake) Cree Indian with traverse, Calgary. Kuskita Au Musqua (Black Bear) by Thomas Fisher Rare Book Library 저작자 표시

 

 

사실 동양 문화권에서 자라왔다면, 인디언의 삶의 방식이나 연기적(緣起的)이고 순환적 인생관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단선적인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삶을 이해하는 기독교적 문화관에서 살고 있는 서구인의 눈에는 인디언의 사고방식이 충분히 낯설고 충격적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디언들은 ‘인생은 끝나지 않는 시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행복에 집착하지도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은 시간을 우리처럼 단선적이지 않고, 늘 돌고 도는 원으로 보았다. 오늘도 있고 내일도 사라지지 않는 시간 개념 때문에 인디언의 언어에서는 과거나 미래를 나타내는 동사 변화가 없다. 오늘에 충실할 뿐 미래에 집착하지 않았다. 반면 현대인들은 현실에 살지 못하고 미래에 집착한다. 미래에 집착하는 것은 욕망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48p, 54p)

 

 

 특히 순환되는 시간의 고리 속에서 인간과 동물, 그리고 사물, 심지어는 생각이 유형화 되는 말(言) 그 자체까지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고방식은 상당한 철학적 고민을 수반하는 화두였을 것입니다. 연기론과 환생이라는 종교철학을 가진 불교문화권 안에서 살아 온 저 조차도 일부 개념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인디언들은 사물들이 맺고 있는 현재의 관계를 살피는 데에도 집중했다. 자신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전체 환경에 즉각적인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따라서 사냥감도 죽었든 살았든 존중해서 다루었고 돌, 물, 산도 섣불리 대하지 않았다. (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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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quapita, (Hair in Knot) Cree Indian, Calgary
Pisquapita, (Hair in Knot) Cree Indian, Calgary by Thomas Fisher Rare Book Library 저작자 표시

 

 뿐만아니라, 인디언의 경제관념도 우리의 그것과는 달리 상당히 낯설고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소유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이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일 뿐 나에게만 배타적으로 보장되는 소유라는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외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마음에 듭니까? 그럼 가지세요. 이제 당신 것입니다.” 라고 말이죠.

 

 

그들에게 있어 ‘소유’는 지금의 천박한 의미와 사뭇 다르다. 소유란 본래 ‘머무는 것’이다. 따라서 잠시 곁에 머물 뿐 그것을 결코 가지려 하지 않았다. 죽은 동물 옆에 서서 사진을 찍는 백인 사냥꾼의 행동은, 크리족에게는 그저 동물의 생명을 직접 빼앗고 그 사체에 발을 올려놓는 것이다. 그들은 저축이 무엇인지 부동산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소유한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36p)

 

 이러한 사고방식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연출하기도 했는데요, 저축과 절제를 강조하며 인디언들을 문명화시키려는 선교사들보다, 저축없이 하루 하루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인디언들이 더 믿음이 좋은 듯한 외형을 연출하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누가복음 12장 27절 ~ 29절의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라는 말씀에 따르면 말입니다.

 

 

 

 

 

 사실 인디언 사회에 대한 관심은 서구문명이 봉착한 위기와 그 해법을 찾는 일련의 과정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황폐화된 자연과, 물질중심의 사고방식이 불러온 인간성 상실, 그리고 경쟁 위주의 삶이 야기한 영혼의 결핍까지...이러한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 혹은 그 대안으로 모색된 것이 바로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인디언들의 철학만으로 현대 사회의 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황금열쇠를 찾을 순 없을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마치 제각각의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린 남산의 자물쇠 나무처럼 각각의 문제와 이해관계들이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디언들의 이야기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재조명해야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인류 초기의 근원적인 고민들과 답변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거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처음 군락을 이루고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어야 했던 이유, 자연에 모든 것을 의지했던 인류가 자연에 대해 가졌던 무한한 경외감과 고마움 같은 것들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답과 질문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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