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기대작 중에 하나였던 <신의 한수>가 드디어 개봉을 했습니다.
그간 한국 영화에서 크게 다루지 않았던 "바둑"이라는 다소 신선한 소재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매력적인 배우들, 그리고 제 2의 타짜를 표방하며 나온 만큼 수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영화 <신의 한수>입니다.
특히 올 여름 블록버스터라고 주목을 받았던 <트랜스포머:사라진시대>가 화려한 볼거리와 달리 스토리 라인의 부실로 기대 이하의 평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할리우드 대작들을 제치고 예매율 1위라는 초반 흥행 돌풍을 보이고 있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작품.
하지만 누군가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어땠냐고 묻는다면,
"흥행은 하겠지만, 타짜와 같은 흡입력은 없는 영화"
"<신의 한수>를 놓기에는 기력(棋力)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화"
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차라리 바둑 영화로써는 최근에 나온 영화 <스톤>이 좀 더 진정성 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선 실망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우선 영화 <신의 한수>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역시 화려한 출연진들입니다.
정우성·이범수·안성기라는 배우들을 필두로 대한민국의 대표 조연, 김인권·이시영·안길강·최진혁이 캐스팅 된이 영화는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이라 할 정도로 훌륭한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 가는 <큰돌> 역할의 배우 정우성은 매력적인 미소와 초콜렛 복근을 자랑하며 관객의 호흡을 멈추게 했고, 눈 먼 바둑고수 <주님>역의 안성기씨는 무게감 있는 연기를, 내기 바둑꾼 <꽁수>역의 김인권은 특유의 익살스러운 연기를 해나가며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영화의 중심을 잡아갑니다.
그리고 악역 <살수>역의 이범수는 그 잔인한 <살수>라는 캐릭터를 군더더기 없이 소화하며 배역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배우들은 기존 영화에서 자신들이 보여준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패착(敗着)을 보여줍니다. 등장 자체로 배우의 역할과 캐릭터가 한 눈에 보일만큼, 관객들의 기대와 예상에 여지 없이 맞아 떨어지는 배우들의 캐릭터는 이를 연기한 배우의 역량이라기 보다는 감독이 가진 역량의 한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캐릭터들, 마치 배우들의 대표적인 필모그래피를 짜집기 한 것과 같은 배역 구성은 배우의 세밀한 연기나 감독의 연출과 관계없이 대중에게 각인된 배우의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되는 게으르고 진부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바둑이라는 소재가 가진 매력과 대중적인 한계
그 때문인지 영화 <신의 한수>는 바둑이라는 소재의 난해함을 대중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국의 위기감을 빠른 클로즈 업이나 청각효과로 대체하거나 배우들의 대사나 연기를 통해 설명하려는 노력 등이 그러합니다. 그 덕분에 바둑을 접하지 않은 분들도 영화를 즐기기에는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의 균형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설명 되지 않는 바둑 용어들, 예를 들어 "축"이나 "사활"등 바둑을 아는 사람들만 알아듣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영화를 보며 재미를 느끼는데에 편차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국 고스톱을 소재로 한 영화 <타짜>와 달리 바둑이라는 소재가 가진 대중적 한계가 이 영화의 매력이 될수도 있고 아킬레스건이 될 수 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 <조범구>씨의 전작인 <퀵>은 빠른 스토리 라인이 가진 긴장감이 영화의 흥행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상황과 이야기의 전개는 관객들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며 큰 호평을 받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준 빠른 스토리 전개는 관객들의 감정이 고일 틈 없이 흘러가게 만드는 악수(惡手)를 만들어 냅니다.
역시 영화 <타짜>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타짜의 경우 스토리의 완급 조절과 캐릭터의 설명 과정에서 관객들의 감정이 고였다 흘러가는 부분이 존재하며 이 과정에서 캐릭터에 대한 감정의 이입이 이루어지지만, 이 영화 <신의 한수>는 관객들이 캐릭터에 대한 감정을 이입하기도 전에 스토리가 진행이 됩니다.
즉, 형제의 복수라는 큰 이야기를 위해 다른 캐릭터에 관한 설명은 생략되거나 함축되는데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생뚱맞기까지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이야기가 실을 짜서 옷을 만드는 것 처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복수라는 구슬을 꿰기 위해 인물과 사건을 억지로 엮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배꼽>역의 이시영씨가 내기 바둑의 세계에 빠지게 되는 이유나 <배꼽> 이시영씨와 <큰돌>정우성씨의 러브라인, 안성기씨가 분한 맹인 고수<주님>과 안길강씨가 분한 기술자<목수>가 복수에 끼어드는 과정 등은 관객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전에 간단한 내러티브만으로 진행이 됩니다.
게다가 복수라는 큰 줄기의 진행과정은 전형적인 무협지의 스토리 라인을 닮아 있습니다.
그저 잔인한 악의 화신일 뿐인 악당 <살수>역의 이범수씨와 <살수>이범수에게 죽임을 당한 형제의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하며 노력하는 <큰돌> 정우성이 감옥의 독방에서 얼굴과 이름조차 알수 없는 고수를 만나 맹기 대국과 격투 수련을 거치는 과정은 마치 구시대의 무협지에서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난 아들이 계곡에 빠져 기연을 얻는 플롯과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그 밖에 감옥에서 자유롭게 싸움을 배우거나 뜬금 없이 큰 돈을 받으며 조력을 받는 내용, 프로기사를 뛰어넘는 천재적인 바둑 소녀의 등장 등은 스토리의 개연성에 대한 설명 없이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으니 양해와 이해를 해달라는 두리뭉실한 느낌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스토리상의 문제는 웹툰이나 소설 등의 원작이 있을 경우 작품 자체에 대한 대중적인 검증을 사전에 거치게 되지만 이 영화 <신의 한수>는 원작 웹툰이나 소설 없이 순수한 시나리오로 제작된 영화이다 보니, 영화의 스토리를 다듬거나 대중적인 평가를 사전에 거치는 과정등이 미흡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많은 분들이 위의 포스터를 보고 신의 한수 원작 웹툰을 찾지만 이는 프로모션 포스터일 뿐 <신의 한 수 원작 웹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출연 배우들이 가진 티켓 파워만으로 영화 <신의 한수>의 흥행은 어느 정도 보장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트랜스포머>가 기대이하의 성적을 보이고 있고 다음주까지는 이렇다 할 만한 작품이 출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 <군도>와 <혹성탈출>, 그리고 <명량>이 개봉되고 나서까지 이 영화의 흥행이 지속될 지는 의문입니다. 영화가 입속문을 타고 오랜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단지 배우의 힘만이 아니라 스토리가 가진 진정성과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의 한수는 없었다."
이 말이 이 영화에 대한 저의 심정을 대신해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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