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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_ 작자 미상 본문

문화이야기/그림이야기

[조각]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 _ 작자 미상

바람다당 2011. 11. 5. 01:00

 


 

 요즘 서경식氏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책[각주:1]을 읽고 있습니다.
 책의 초판이 나온지는 오래되었지만, 최근 최재천 의원의 추천도서라는 기사를 보았고, 마침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읽고 난 후라 그 연장선상에서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책에 대한 서평은 다음 기회가 생기면 하겠지만, 이 책에서 본 작자
 미상의 조각상 하나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포스팅을 남깁니다.

  이 작품의 작가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15세기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누오바 의료원 부속건물의
출입구 위를 장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도의 정보만
있을 따름입니다. (책[각주:2],140면)
 
 비록 작품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Christ showing his wound)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모습이기에 상당히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우선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왜 이렇게 상처를 벌려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20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와 도마와의 일화와 관련된 내용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도마는 제자들과 함께 예수를 만납니다. 하지만, 도마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가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자 예수는 도마에게 자신의 상처를 만지게 허락을 합니다.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제서야 예수의 부활을 믿은 도마에게 예수는 믿음에 대한 한 가지 말씀을 남깁니다.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이 사건으로 인해 도마는 성경에서 부족한 믿음의 상징으로 대표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한 많은 작품들이 생겨났고,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의심하는 도마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카라바조
1601년~1602년 / 유화 / 캔버스에 유채 / 107x146cm / 포츠담 신궁전 소장

 카라바조의 작품에 나타난 예수는 도마에게 자신의 상처를 만지게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도마는 그 상처를 직접 만져봅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는 도마의 손을 이끌고 있는데, 마치 "너의 의심을 직접 확인해 보아라. 의심하지 않고 믿지 않는 것보다 의심하더라도 믿는 것이 낫다." 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 장면에서 재미있는 점은 상처를 보지 않고도 믿었던 제자들이 도마만큼 심각한 표정으로 도마의
어깨너머로 예수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이 그림에서와 달리 제자들 스스로 확신이 있었다면, 도마를 향해 웃음지으며 `그것 봐라 내 말이 맞지 않느냐'라는 표정으로 지켜보거나 도마를 꾸짖는 노하는 표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성인의 반열에까지 오른 예수의 제자들이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의심과 불신을 표현한 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정감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한편 작자 미상의 이 작품에서는 단순히 상처를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 예수가 직접 본인의 손으로 상처를 벌려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다소 그로테스크까지 한데, 이로인해 오히려 이 작품은 깊은 인상을 뇌리에 남깁니다.
비록, 조각에 대한 이해가 낮아 그 조형미를 논할 순 없지만, 이러한 표현방식을 택한 작가의 의도는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대에는 조각이 독립한 예술이 아니라 건축의 일부로서 건축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측면에서, 이 작품이 있었던 장소가 병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 작품을 보게 되는 주된 사람들이 주로 환자나 의료관계자였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작가는 믿음없는 도마를 향해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 했던 예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완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환자들을 향해 완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진 십자가상 위의 예수가 아니라, 부활 이후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서 환자들에게 회복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되는 점은, 신앙에 대해 불신과 두려움을 가진 이에게
상처를 벌려 보여주기까지 하면서 의심보다는 믿음을 가지라 하는 예수의 적극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즉, 이 작품 속의 예수는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정죄하는 무소불위한  절대적 권능자로서의 신이 아니라 인간의 끊임없는 불신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간을 믿고 사랑하는 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나의서양미술순례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 미술
지은이 서경식 (창작과비평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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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서양미술사, 서경식, 창비, 개정11쇄, 2011년 [본문으로]
  2. 나의 서양미술사, 서경식, 창비, 개정11쇄, 2011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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