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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야기/그림이야기

[그림] Lady Godiva, John Collier

바람다당 2011. 11. 20. 23:40



Lady Godiva, John Collier, 1898, Courtesy of the Herbert Art Gallery & Museum, Coventry


 

 이 그림은 빅토리아 여왕시대의 신고전주의 화가인 존 콜리어의 Lady Godiva (고다이버 부인)라는 작품입니다.
 존 콜리어의 이름은 그렇게 알려져있지 않지만, 이 그림이 가진 스토리의 힘은 아주 강력합니다.
  

 고다이버 부인은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역의 영주 레오프릭의 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바이킹족의 침략으로 인해 주 지배계층이 바이킹족이었고, 고다이버 부인의 남편 또한
바이킹족 출신의 영주로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이 시기 지배계층인 바이킹족들은 가혹한 세금 수탈을 하곤 했는데, 이로인해 많은 영국 농노들이 자유농에서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고, 같은 민족으로서 이러한 현실에 가슴아파하던 고다이버 부인은 남편에게 농노들의 세금을 줄여줄 것을 끊임없이 간청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금감면을 해 줄 생각이 없었던 남편은 부인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기 위해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 하나를 제안합니다. 


그림1


 그것은 부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탄채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농노들의 세금 감면을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영주의 부인이라는 신분으로 벌거벗은채 말을 타고 사람들이 가득한 마을을 돌아다닌다는 것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다이버 부인은 농노들의 세금 감면을 위해 벌거벗은채로 말에 오르게 됩니다. 

 그렇게 부인이 치욕을 감내하고 마을을 거니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영주 부인을 위하여 모든 문과 창문을 닫고 집안에만 머물며 부인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다이버 부인의 스토리는 일면, 구약성경 속 에스더 여왕 (같은 민족인 유태인들을 위해 침략자인 왕이자 남편 앞에 용감히 나아갔던 부인 에스더의 스토리)을 연상시키도 하지만,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주는 스토리의 힘이 강력하기에 이 그림은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림2



  따라서 그러한 스토리를 살리기 위해 작가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피정복자로서의 영국인들의 고통, 농노들의 헐벗음과 좌절, 지배계층의 폭정과 무자비함 그리고 그 속에서 억압받는 농민들을 위해 여자로서의 치욕마저 감내한 한 여인의 숭고한 이야기에 대해서 말입니다.


 

 작품을 가만히 지켜보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 여인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말을 타고 갑니다. (그림 1)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의 벗은 모습 속에서는 천박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머리카락으로 수줍게 앞섶을 가린 그녀의 손가락과 앳딘 얼굴이 그 가녀린 외적인 측면과 순수함을 나타낸다면, 그녀가 타고 있는 백마의 위풍 당당함과 영국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말의 장신구는 그녀의 내적인 강인함을 대변해 주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림 2)

 즉, 작가는 이런한 의도 아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그녀의 벌거벗은 몸을 붉은색과 황금색 장신구로 화려하게 치장된 백마와 대비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그림이 주는 강렬함은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림이 주는 메세지입니다.
 남을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 수치심보다 중요한 것을 아는 지혜,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따뜻함까지...정치적 이익과 당리당략에만 치중하는 실망스러운 정치인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국민(농노)을 위해 자신의 자존심마저 내려놓는 고다이버 부인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무리일까요?

 


 Lady Godiva의 전설>>>
 

11세기의 영국은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6세기 이후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앵글로색슨(Anglo Saxon)의 나라였고, 8세기와 10세기에는 북유럽바이킹 족인 데인인들의 침략을 받았으며, 11세기 초반은 이 데인족의 왕인 크누트 1세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데인인들의 영국 통치로 농민계층의 몰락을 야기시켰습니다. 이전에는 영주의 땅을 빌려 소작만 하던 농민들의 자유 신분이, 데인인들의 가혹한 세금징수에 의해 노예상태인 농노의 신분으로 하락했고, 급등하는 세금의 무게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으며, 영주에게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고 속박되었습니다.

런던과 비교적 가까운 코벤트리도 마찬가지여서, 이 지방의 영주 레오프릭도 농민으로부터 징수하는 세금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신실한 종교인이었며, 신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던 고다이버는 본 토착민인 앵글로색슨이며, 남편은 통치하던 데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다이버는 나날이 몰락해가는 농민들의 입장에서 가슴 아파 하였고, 남편의 과중한 세금을 줄여 영주와 농민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고다이버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 보내던 남편 리어프릭은 그녀의 간청이 그칠 줄 모르자, 도저히 불가능해보이는 제안을 그녀에게 하는데, 그녀의 농민에 대한 사랑이 진실이라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세금감면을 고려해보겠노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림으로 보아 그녀는 깊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며, 많이 망설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코벤트리 마을의 농민들 사이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으며, 거사가 이루어질 날짜와 시간도 알려졌습니다. 이에 마을 농민들은 영주 부인의 마음과 결단에 감동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녀의 숭고한 의지를 존중하여, 다함께 큰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녀가 마을을 도는 동안, 누구 단 한 사람도 내다보지 않기로 약속을 한 것입니다. 마침내 고다이버 부인이 벌거벗은 채 마을로 내려온 날 아침, 코벤트리 전체는 무거운 정적이 흐렀으며 이 은혜로운 알몸행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도저히 호기심을 참지 못했던 코벤트리의 양복재단사 톰이 마을사람들과의 약속을 잊어버렸고, 그만 커튼을 슬쩍 들추어 부인의 벗은 알몸을 보려는 순간, 그만 눈이 멀어버리고 말았습다. 아름답고 숭고한 고다이버의 뜻을 성적인 호기심으로 더럽힌 데 대한 신의 징벌이었다는 전설입니다. 또한 훔쳐보기의 대명사(관음증)로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말로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http://me2.do/Grmb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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