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 영화를 추억하시는 분들과 함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좋겠네요.
이와이 슌지 Shunji Iwai 감독의 두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그 특유의 감성과 에피소드로 이와이 슌지 감독만의 감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감정선을 지나치게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작은 에피소드들을 도미노처럼 배열해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또한 1인 2역(이츠키/와타나베 히로코)의 역활을 한 나까야마 미호(中山美穗)의 깊고 잔잔한 연기력은 많은 관객들의 마음 속에 각인처럼 남아있는데 그 첫 장면이 바로 위의 장면입니다.
이 영화는 사랑하는 연인을 조난사고로 잃은 여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가 차가운 눈을 맞으며 숨을 들이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을 묻고, 그 남자의 집에 간 와타나베 히로코는 우연히 남자의 어머니와 함께 졸업앨범을 보게 되고 그 졸업 앨범 속에서 죽은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의 이름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와타나베 히로코는 죽은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를 그리워하며 그의 학창시절 주소로 돌아오지 못할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 편지는 죽은 약혼자와 동명이인이었던 동창생 후지이 이츠키(나카야마 미호의 또 다른 역) 에게 배달 되게 됩니다. ( 동명이인임을 착각하고 편지를 잘 못 보낸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낯선이로부터 편지를 받게된 후지이 이츠키(동명이인의 동창생)는 당혹스러움에 답장을 보내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와타나베 히로코는 죽은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에 관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기위해, 약혼자의 학창시절 고향이었던 오타루에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약혼자의 학창시절 동창이었던 후지이 이츠키를 만나기 위해 찾아가지만,
그녀(후지이 이츠키)와 운명처럼 길이 엇갈리게 되고, 대신 와타나베 히로코는 편지를 통해 사랑했던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의 학창시절에 관해 듣기로 합니다.
한편 후지이 이츠키는 와타나베 히로코에게 자신의 학창시절 후지이 이츠키에 관한 추억을 나누어주기 위해 편지를 쓰다가 추억 속으로 빠져듭니다.
개학 첫 날 두 사람(후지이 이츠키/후지이 이츠키)은 자신들이 동명이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으례 그렇듯 두 사람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친구들로 부터 서로 사귄다는 놀림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의식적으로 서로를 피하게 됩니다.
하지만, 학교 도서관 사서를 하던 여학생 이츠키는 책을 자주 빌리러 오던 남학생 이츠키의 존재와 그에 대한 감정의 변화를 깨닫게 되는데 그 장면이 바로 러브레터의 명장면 도서관 커튼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수했던 두 청춘은 서로를 향한 감정을 확인할 용기도 없이 어색한 감정을 조금씩 키워나갑니다.
그렇게 학창시절의 추억을 정리하던 이츠키는 약혼자의 학창시절 학교의 모습을 찍어달라는 히로코의 부탁을 받고 학교의 모습을 찍던 중 우연히 학교후배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학교 후배들 사이에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이 대출카드에 기입된 책을 찾는 놀이가 있음을 알게됩니다.
한편 약혼자 이츠키가 조난당했던 산을 찾아간 히로코는 그 곳에서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약혼자 이츠키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던집니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로 유명한 "잘지내세요? 저는 잘지냅니다."라는 질문인데 이 짧은 대사 속에 수 많은 감정선이 얽혀있습니다.
그것은 떠나간 이에 대한 그리움,
자신은 잘 견뎌내고 있기에 걱정말고 편히 쉬라 당부하고 싶은 안타까움,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 미안함등인데,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은 자국을 남긴 이 짧은 대사는 영화를 보는 사람 저마다의 사연이 되어 또 다른 이야기로 모였다 흩어집니다.
그렇게 다시 이츠키의 추억 속으로 돌아온 영화는 천천히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갑니다.
도서관 사서였던 이츠키에게 자신이 빌린 책을 전해주기 위해 이츠키가 돌아옵니다. 하지만, 이츠키의 집안은 상을 당한 상태였기에 이츠키는 우물쭈물 자신의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만 거칠게 내뱉은 후 자전거를 타고 떠나가게 됩니다.
이츠키가 상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오지만, 이미 이츠키는 전학을 가고 그 자리에는 꽃병만 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꽃 병은 아이들의 장난으로 깨지고 맙니다. 결국 두 사람은 끝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지 못한채 헤어지게 됩니다.
한편 이 영화에는 죽음에 대한 암시나 복선이 특히 많은 것 같습니다.
깨어진 꽃 병이 그렇고,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것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얼어붙어 죽어있는 잠자리등이 그러합니다. 또한 일본 문화권에서는 벚꽃이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때 하늘에서 하늘 하늘 떨어지는 눈도 그러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츠키의 죽음으로 이야기의 진행이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각 스토리가 모이고 흩어지기에 여기저기에 그런 복선을 심어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마무리하고 이를 정리해 히로코에게 편지를 보내려던 이츠키는 갑자기 학교 후배들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후배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보여주는데, 이 책은 바로 전학을 떠난 이츠키가 마지막으로 반납한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의 대출카드 뒷면에는 자신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츠키는 비로소 학창시절 전학을 간 이츠키에게 자신이 가졌던 감정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전학을 간 이츠키는 아무도 대출하지 않는 책의 대출카드에 도서관 사서였던 이츠키의 이름을 기입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의 감정을 전했고, 그 것을 끝까지 눈치채지 못한 그녀에게 대출카드에 그녀의 초상화를 그림으로서 그 마음을 전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감사함과 그리움속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아래와 같은 독백을 하며 영화를 마칩니다.
러브레터라는 영화의 면면에 흐르는 사랑에 대한 감정과 성찰, 그리고 지나치치 않으면서 언뜻언뜻 감정선을 건드리며 지나가는 그 흐름이 좋습니다. 사랑이 물질로 대체되고 조건으로 변환될 수 있는 세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이처럼 순수한 사랑에 대한 지난날의 감정이 그립네요. 이 영화와 함께 그 시절의 감정을 한번쯤 기억에서 꺼내 다시금 재생시켜 보고 싶은 날입니다.
감독 : 이와이 슌지
주연 : 나까야마 미호(후지이 이츠키/와타나베 히로코), 토요카와 에츠시(시게루 아키바)
'문화이야기 >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300 제국의 부활, 주인공 3인 3색 그리고 뒷 이야기 (2) | 2014.03.08 |
---|---|
[영화] 모뉴먼츠 맨 - 화려한 캐스팅과 과욕이 빚어낸 참사 (0) | 2014.03.01 |
[영화] 나약한 영웅과 혁명가의 대결,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 (18) | 2012.08.17 |
[다큐] Project Nim, 수화를 배운 침팬지,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14) | 2012.08.13 |
[영화] 래빗홀_저마다 짊어져야 할 슬픔의 무게 (4) | 2011.12.08 |
[영화] 인타임_영화 보다 소재를 눈여겨 볼 만한 영화 (5) | 2011.12.03 |
[미드] 볼만한 로맨스 미드 Men in Trees (0) | 2011.12.01 |
[영화] 원스(once)의 사랑이야기 (1) | 2011.10.02 |